떡찰...
이건희 수사와 박연차 수사, '극과 극'
김용철 진술은 무시, 박연차 진술은 신뢰
"삼성 돈 받았다" 지목된 공직자는 승승장구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뉴시스 |
그런데 두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 방식은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삼성 구조본의 불법 로비에 대해 수사했던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내부고발자인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철저히 무시했다. 특검은 오히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 변호사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며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검이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에게서 돈을 받은 인물'로 지목한 이들을 불러 조사한 것도 아니다.
임 채진(현 검찰총장), 이종백(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귀남(현 법무부 차관), 이종찬(현 정부 첫 대통령실 민정수석, 현 변호사), 김성호(현 정부 첫 국정원장), 황영기(KB금융지주 회장) 등은 언론에 '삼성 장학생'으로 공개됐지만, 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삼성 돈을 받았다"라고 알려진 이들을 승진시키기도 했다. 이귀남 차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연차 돈 받았다" 지목되면 수감…'살아있는 권력'은 예외
▲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연합뉴스 |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이 수사에서 검찰은 철저하게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했다. 삼성 비리 수사를 맡은 특검이 김용철 변호사를 믿을 수 없다고 못 박은 것과 달리, 박연차 게이트 수사팀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예 따지지를 않았다.
박 전 회장이 로비 대상자로 꼽은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 역시 자의적으로 이뤄졌다. 박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하는 명단에 포함된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모두 구속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은 박 전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일찌감치 수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은 건드리지 못하고, '죽은 권력'만 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래서였다.
"삼성 비자금은 수사 불가"
비 자금 문제로 들어가면, 둘의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삼성 비리 수사 당시, 특검은 삼성 해외 법인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은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해외 계좌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 비자금 역시 덮어버리긴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화재가 조성한 비자금이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2008년 1월 25일 새벽 서울시 중구 삼성화재 본관과 이 회사 전산센터 등을 전격 압수 수색 했다. 삼성 계열 보험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사람의 제보에 따른 것이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고객에게 지급하기로 했으나 합의 등의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미지급 보험금, 고객이 잘 찾아가지 않은 렌트카 비용 등 소액의 돈을 따로 모아 차명계좌에 빼돌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왔다. 그리고 제보자는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이 삼성 구조본에 전달됐다고 했다.
그런데 특검은 이 사건을 삼성화재 사장 개인의 횡령으로 처리했다. 미지급 보험금 등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이 돈이 구조본에 전달됐다는 진술만 외면했다. 삼성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으로 결론 나는 것을 막은 셈이다.
▲ 삼성SDI(옛 삼성전관)과 삼성물산 해외법인 사이의 거래에 관한 서류들. 삼성 그룹이 해외 법인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프레시안 |
삼성 SDI가 해외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입증하는 'SDI 메모랜덤' 역시 특검이 외면했다. 이 서류가 1994년 작성된 것이어서 너무 오래됐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SDI 메모랜덤'에 있는 내용은 기본 계약이다. 이후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비자금을 만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특검은 이런 가능성을 무시했다. (☞관련 기사: 여전히 수상한 샘플비…특검은 뭐 했나?)
"박연차 비자금 수사는 원활"
비 자금 수사에 대한 이런 금기들이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에서는 말끔히 제거됐다. 지난 3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발표에 따르면,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은 250만 달러의 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관리해 왔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건넨 돈이다. 박 전 회장이 홍콩 APC계좌에서 차명으로 관리한 비자금 역시 검찰은 파헤쳤다. 해외 비자금 수사 역시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꼭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9-05-27 / 프레시안
경영권 승계 과정 ‘편법’ 아닌 ‘불법’ 규명
경향신문 2008-04-17 18:14:19
장관순·박홍두기자
폭로내용과 특검 설명
김 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삼성그룹의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 여러가지의 의혹을 폭로했다. 김 변호사의 기자회견은 삼성특검 수사를 촉발시킨 발단이 됐다. 100일 가까운 특검 수사결과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들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종지부를 찍은 양상이다. 경영권 세습 의혹은 일부 밝혀내는 성과를 냈으나 정·관계 로비의혹 등 눈덩이처럼 불어난 각종 의문점들은 끝내 해소되지 못했다. 김 변호사의 의혹을 중심으로 특검 수사결과를 비교해본다.

특검발표 지켜보는 삼성직원들 삼성그룹 홍보실 직원들이 17일 조준웅 삼성특검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TV로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기자
①비자금 조성관리…차명계좌 돈은 이건희회장 개인재산”
김 용철 변호사는 “삼성본관 27층 재무팀 관재파트 사무실 내부에 현금 뭉치와 각종 상품권이 가득찬 ‘비밀금고’가 있다. 재무팀 관재 파트의 직원들이 수시로 현금이 든 대형 가방을 비밀금고로 옮기는 광경을 목격했다. 삼성물산 해외 지사가 삼성전관(삼성SDI)과의 자재 구매계약 과정에서 단가의 13~19%를 빼돌려 총 2000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삼성중공업은 거제 앞바다에 건조 중인 배가 수십척 떠있는 것으로 꾸며 분식회계를 했다”고 삼성의 비자금 조성·관리 실태를 폭로했다.
비자금 의혹은 특검 수사를 촉발시킨 핵심 의혹이다. 폭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지만 특검팀은 수사결과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김 변호사가 당초 제기한 계열사 동원 비자금 조성 대신 삼성화재의 고객 돈 빼돌리기 9억8000만원 정도만 확인했다.
특 검팀은 ‘현행 법규상 불가능’(계열사 분식회계) ‘해외 재산 추적의 어려움’(삼성물산 해외지사 의혹) 등 수사 면에서의 한계를 강조했다. 특검팀은 “해외법인에 대한 회계분석을 통해 혐의사항을 확인한다고 해도 해외법인의 금융계좌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비밀금고’ 발견에도 실패했다. 김 변호사의 폭로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인 지난 1월 삼성본관 압수수색을 벌인 특검팀은 뒷북을 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기간 건물 구조변경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뒤늦은 수색이 이뤄진 셈이다.
차명계좌 추적을 통한 비자금 존재여부 규명도 뒷심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특 검팀은 1199개 차명계좌와 삼성생명 전·현 임원 명의 지분 16.2%에 담긴 4조5000억원어치의 의심스러운 돈뭉치를 찾아냈지만, 이 돈에 대해 결국 이 회장 개인재산으로 판정했다. 차명재산이 모두 이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삼성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② SDS 회사채 헐값 발행… “7150원 BW가격 5만 5000원이 적정”
김 변호사는 “김인주 사장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을 기획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나는 10년간 발목 잡을 일이라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특검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BW 발행 과정을 구조본이 주도했다고 결론냈다. 구조본 재무팀 박재중 전무(2005년 사망)가 삼성SDS 주식이 상장되면 경영권 지배를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사전 대책 차원에서 BW 헐값 발행 계획을 세웠다.
또 상장에 따른 막대한 시세 차익이 이 회장 일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도 노렸다.
이 기획안은 김 사장을 거쳐 이학수 부회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됐다. 이 회장은 “계획대로 추진하되 BW를 인수할 때 이재용 남매뿐 아니라 이학수와 김인주도 동참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회장은 사채 발행을 지휘한 뒤 54억원어치를 매입했고 김 사장에게 사채 매입자금 27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검찰이 ‘적정’ 의견을 낸 BW 발행가격도 특검에서 뒤집혔다. 특검은 별도로 가격을 산정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거래 가격을 감안해 주당 5만5000원을 적정가로 평가했다. 주당 7150원에 발행된 것은 터무니없다는 얘기다.
또 BW 발행을 결정한 이사회에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조두현 이사는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특검팀 수사에서 드러났다.
중앙일보와 삼성 간 위장 계열분리 의혹은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조현철기자>
③정·관계 로비…“정황 부족·공소시효 지나 수사 어려워”
김 변호사는 “이종찬 고검장(현 청와대 민정수석)은 휴가비 받으러 삼성본관으로 직접 찾아왔다. 김성호 차장(현 국정원장)에게는 직접 떡값을 전달했다. 임채진·이종백·이귀남 등 고위 검사들은 인맥을 활용해 로비했다”고 폭로했다.
특검팀은 로비 대상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김 변호사 진술의 신빙성이 약하고, 공소시효(5년)를 넘긴 사안이 많아 더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한다. 조준웅 특검은 “실명이 거명되고 정황이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우 수사해보려 했으나 수사로 나아갈 수 있는 정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종찬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목격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진술과 건물의 구조상 이를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2000년 여름 회사로 찾아온 이 수석을 함께 봤다”고 지목한 당시 부하직원들은 특검팀 조사에서 전면 부인했다.
특 검팀은 “김 변호사 소환조사 중 문제의 부하직원이 마침 소환돼 있어서 대질조사를 권유했지만 김 변호사가 거부했다”며 “특히 자신이 직접 로비 대상을 선정했다면서도 로비 명단 전달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등 김 변호사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성호 국정원장의 경우 “1999년 봄 비행기를 타고 창원지검장실로 찾아가 500만원을 전달했다”는 김 변호사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시기 김 변호사의 비행기 평일 탑승기록은 1월15일이 유일하지만 이는 봄이라고 보기 어렵고 당시 김 변호사가 창원지검을 방문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특검팀이 로비 수사에서 김 변호사 입에만 의존한 채 로비 대상자들에게는 서면을 통해 해명서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수석이 삼성으로부터 현금다발을 받았던 사실은 수사하지 않는 등 로비 수사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홍두 기자>

④ 비자금 미술품…“위험 무릎쓰고 구조본 돈 쓸 이유없어”
김 변호사는 “홍라희씨는 2002~2003년 삼성 구조본 재무팀 관재 파트에서 관리하는 비자금으로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를 통해 ‘행복한 눈물’(716만달러) ‘베들레헴 병원’(800만달러) 등을 포함한 수백억원대의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30개 해외 미술품 리스트와 금액을 공개했다.
특검팀은 “홍송원씨가 그림 판매를 위해 십수일간 홍라희씨 자택에 보내줬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삼성 비자금의 미술품 구입 의혹을 무혐의 내사종결했다.
홍송원 대표는 특검팀에 “미술품 목록 상 30개 작품 중 홍라희씨에게 판매한 것은 없다.
‘행복한 눈물’은 홍라희씨에게 구매 권유를 위해 집으로 2차례 정도 보내준 적은 있으나 결국 성사가 되지 않아 다른 8점과 함께 현재 내가 보관 중”이라고 진술했다. 특검팀은 이를 수용했다.
특검팀은 이후 이 회장과 홍라희씨 등에 대한 소환조사 결과 이 그림이 십수일 동안 집안 거실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홍 대표 진술에 따르면 또 다른 고가 미술품인 ‘베들레헴 병원‘은 홍라희씨가 아닌 제3의 인물에게 팔렸다가 수개월 후 뉴욕 크리스티에 재경매 물건으로 나가게 됐다.
홍 대표는 또 “30개 중 6개는 구매자를 찾지 못해 외국으로 재반출했고, 15개의 작품은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했다”고 진술했다.
특검팀은 에버랜드 창고에서 발견한 미술품들의 구입자금은 이 회장의 차명 개인재산에서 지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검팀 수사 결과 홍 대표 진술과 달리 홍라희씨가 비자금 미술품 목록에 있는 스기모토의 ‘극장 씨리즈’ 중 ‘메트로폴리탄’ ‘라 팔로마’ 등 각 2000여만원 상당의 작품 2점을 산 것이 확인됐다. 결국 홍 대표도 거짓 진술을 한 셈이 됐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채 수사가 끝났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이영경 기자>
⑤ 에버랜드 대책회의…“수사·재판 모의연습 유무 규명못해”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3년 전략기획실 김인주 사장 등이 대책반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 작업을 벌였고 모의 검사실과 법정을 만들어 도상연습을 했다”고 폭로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 됐다. 특검팀에 소환된 김석 삼성증권 부사장은 “검찰수사 단계에서 (이건희 회장의 재산관리인인) 박재중 전무(2005년 사망)의 요청으로 미국에 유학 중인 이재용 전무에게 실권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권유했다고 거짓 진술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그러나 삼성이 실제로 모의 검사실과 법정을 만들었는지는 규명해내지 못했다. 삼성 사내 변호사들은 “수사 및 재판에 대비하기 위해 도상 연습을 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다만 특검팀은 “설령 허위진술과 훈련이 있었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이런 행위만으로 증거인멸죄나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위진술을 했다는 시인을 받았지만 사법처리할 수 없다는 게 특검팀의 결론이다.
특검팀은 그러나 에버랜드의 경영권이 불법 승계되는 과정의 전모를 밝혀냈다. 당시 구조본에 소속돼 있던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과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이 CB 헐값 발행-실권-이 전무 배정이라는 기획안을 마련했고, 에버랜드 경영진에게 이 계획대로 실행할 것을 지시했다. 기획안은 이학수 당시 전략기획실장과 현명관 비서실장을 거쳐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됐다.
조준웅 특검은 “기획안에 대해 이 회장이 보고받은 사실은 확인됐다”며 “구조본이 이 회장의 손발과 같은 조직이어서 이 회장도 알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권주를 배정할 때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가 필요한데 이런 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또 에버랜드와 중앙일보 간 실권주 맞바꾸기 의혹에 대해서도 삼성 구조본과 중앙일보 간 공모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조현철기자 〉
[출처] 이건희 수사와 박연차 수사, '극과 극'-검찰수사|작성자 티티카카